[카테고리:] 시조

  • 삼월

    삼월

     

     

    산수유 뽀얀 숨결

    언 가슴 녹인 불씨

    비둘기 맨발에도

    꽃신 한 짝 신겨줄까

    잊었던 노래 가지마다

    두런두런 피는 꽃등

     

    털모자 벗으며

    시든 사랑에 물을 주네.

    듬성한 머리 사이

    꽃대 한 촉 싹이 틀까.

    신바람 나비 춤 앞세워

    분홍 발로 오는 삼월

     

     

    2019. 3. 1

  • 미소가 따라와서

    미소가 따라와서

     

     

    엊그제 마곡사

    석가 불 그 미소가

    내 꿈속 비좁은

    골목까지 따라와서

    아이 참, 욕하려 해도

    빙그레 웃음만

     

    그러게 살던 대로

    막 살면 되는 게지

    마음속에 부처는

    왜 모시자 욕심 부려

    아이고, 이제 큰일 났네

    욕도 한 번 못하고

     

     

    2019. 3. 6

  • 서해의 저녁

    서해의 저녁

     

     

    바다의

    비린내를

    노릇노릇 구워놓고

    지는 해

    노른자처럼

    소주잔에 동동 띄워

    마신다.

    귀가 열린다.

    물새들의 속삭임에

     

    기우는

    하루해를

    잡아서 무엇 하리.

    잔 부딪칠

    사람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파도로

    어둠 흔들어

    잠 못 드는 밤바다

     

     

    2019. 2. 17

  •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사색의 파편破片인가

    시간의 대화對話인가

    깜빡 든 잠 속에서

    한 점으로 일어서서

    온 세상

    빗질하려고

    부스대는 날갯짓

     

    가고 오는 인연들이

    정결하게 씻기는데

    저 큰 붓질 한 번에

    인간사 다 지워지고

    깨다 만

    꿈결 속에서

    머언 산만 솟는다.

     

     

    2018. 12. 27

  •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 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 딸 바보

    딸 바보

     

     

    아빠랑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엔

    내 얼굴만 가득가득 담겼네요.

     

    아빠는

    어떤 꽃보다

    내가 제일 예쁘대요.

     

     

    2018. 8. 11

  • 가시연

    가시연

     

     

    예쁘고 고운 것은

    눈만 흘겨도 쉬이 아파

     

    물 저만큼 터를 잡고

    완고한 장창처럼

     

    가시를

    세운 후에야

    자줏빛 저 환한 웃음

     

     

    2018.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