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퇴임退任 이후

    퇴임退任 이후

     

     

    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는

    이웃마을 마실가듯

    편한 일은 아니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으로만 비틀거리며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의 기를 세운다.

     

     

    2014. 11. 2

  • 낮달

    낮달



    가을비가 씻어놓은

    아가의 뽀얀 볼에

    엄마가 일 나가면서

    뽀뽀뽀 하고 갔는가,

    잠든 채

    찍어놓다가

    일그러진 입술 자국. 



    햇살이 눈부셔도

    방긋 웃는 아가 얼굴

    초록별 이야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네.

    비단강

    노를 저어서

    어디 멀리 가고 있나. 



    2014. 10. 24

  • 아우성

    아우성

     

    늦가을 아침

    산의 속살 더 정결하게 드러난다.


    긴 여름 들끓던 폭염

    가둬 키운 단풍 한 잎


    마지막

    못다 한 사랑

    펄럭이는 아우성

     

     

    2014. 10. 24

     

  • 주름살 – 시장 풍경 3

    주름살

         – 시장 풍경3 



     

    호박잎 두어 묶음

    마늘 감자

    서너 무더기

     

    서둘러

    달려가는

    찬바람의 뒤꿈치에

     

    할머니

    얼굴에 파인

    장마 뒤의

    깊은 계곡


    2014, 10. 13

     

  •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굽은 허리 웅크린 채

    쩔쩔매는 저 할머니,

     

    수퍼 집 박스 하나

    몰래 훔쳐 실었다고

     

    손수레 엎어진 채로

    노인 하나 혼나고 있다.

     

     

    아들은 누워있고

    며느리는 도망가고

     

    어린 손자 연필 값에

    손이 절로 움직여서

     

    백 원 쯤 박스 하나로

    만 원어치는 혼나고 있다.

     

     

    2014816

  • 독도

    독도

     

    그리움의 높이만큼 해당화 꽃 하나 켜고

    피멍울 속울음을 파도에 갈고 갈아

    대양의 폭풍우 향해 질긴 날을 세운다.

     

    먼 수평 하늘가에 흰 돛 한 폭 나부끼면

    설렘을 먼저 알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사랑은 사치이로세. 마음 다시 다잡는 섬.

     

    2014. 3. 13

  • 황사黃砂

    황사黃砂

     

     

    제주에서 날아올라 청주 공항 오며 보니

    바다도 산도 마을도 황사에 잠겨 있다.

    봄 물기 오른 산하가 딸꾹질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찾아오던 봄 불청객 고비 황사

    대륙의 몸부림에 독기까지 배어 있다.

    뻐꾹새 울다 목메어 자지러진 회색 빛 숲.

     

    집집마다 창 내리고 앞산도 멀어지고

    비질 된 골목처럼 비어가는 반도의 거리

    일찍 핀 나뭇잎들만 분 바르고 서 있다.

     

    차 한 대 없던 옛날도 편서풍 따라 봄에

    서해 건넌 모래 먼지 송화처럼 내렸는데

    증명할 방법 있냐고? 후안무치한 놈들!

     

     

    2014. 2. 2

  • 思父 一曲 – 눈길

    思父 一曲

     

    눈길

     

     

    아버님 제삿날 저녁 때늦은 春雪로

    설화 곱게 피어난 연미 고개 넘으면서

    雪花 속 아롱거리는 아버님 모습을 본다.

     

    개학 전날 暴雪로 교통이 두절되어

    오십 리 넘는 公州 아들 혼자 가는 길에

    마음이 애틋하셔서 따라 나선 아버지.

     

    눈보라 칼바람에 온몸 꽁꽁 얼으셔서

    우성 지난 길가에 주저앉아 떠시면서도

    내 옷깃 여며주시던 모닥불 빛 그 손길

     

    금강 건너 도심에 한 등 한 등 켜질 무렵

    “네 덕분에 먹고 싶던 짜장면 먹는구나”

    허기진 젓가락 들어 덜어주던 아버지

     

    이제는 짜장면 천 그릇도 살 수 있네.

    짜장면 잡숴주실 아버님이 안 계시네.

    춘설은 풍요로워도 구름처럼 허전한 길.

     

     

     

    2014. 1. 10

     

     

  • 닭서리

    닭서리

     

    친구 부모 원행 간 집 동네 조무래기 모두 모여,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해 닭서리를 하였는데, 암탉, 수탉 서너 마리

    가마솥에 푹푹 삶아 미친 듯이 뜯다 보니 백골만 다 남았네.

     

    아침에 닭장에 가신 어머니 비명소리에 혼백이 다 날아가 소화된 닭이

    넘어올 듯…….

     

    2013. 12. 15

     

     

  • 동행(同行)

    동행(同行)

     

    누군가 새벽 산길

    혼자 넘은

    외발자국

     

    그의 삶에 기대면서

    그의 마음 밟고 간다.

     

    외로운

    눈길에 깔아놓은

    털옷처럼 따스한 정.

     

     

    닫은 문 귀를 열면

    앞서 간 이

    내미는 손

     

    어디선가 밀어주는

    함성 소리 밟고 간다.

     

    고갯길 막막하여도

    인생은 동행이다.

     

    2013.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