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거꾸로 선 나무

    거꾸로 선 나무

     

    세상은 안개 세상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옳은 것 그른 것도 능선처럼 흐릿하다.

    물 아래 물구나무로 입 다물고 섰는 나무.

     

    거꾸로 바라보면 세상이 바로 설까

    호수에 그림자로 뒤집어 다시 봐도

    정의도 불의도 뒤섞여 얼룩덜룩 썩고 있다.

     

    여명이 밝아 와도 배는 띄워 무엇 하랴.

    부귀도 흘러가면 한 조각 꿈인 것을

    차라리 물 깊은 곳에 집을 틀고 싶은 나무

     

     

    2019. 9. 25

  • 산울림

    산울림

     

    비 온 후 계족산이

    새 식구 품었구나.

     

    눈빛 맑은 물소리와

    새 사랑 시작이다.

     

    마음이 마주닿는 곳

    향기 짙은 산울림

     

     

    2019. 9. 23

  • 생가 터에 앉아

    생가 터에 앉아

     

    버려진 구들장을

    슬며시 뒤집으면

    무심코 흘리고 간

    어린 날 내 웃음소리

    누나야

    수틀에 담던

    뽀얀 꿈은 어디 갔나.

     

    무너진 골방 터엔

    어머니 베틀소리

    누군가 베어버린

    감나무 썩은 둥치

    아버지 못다 한 꾸중

    회초리로 돋아있다.

     

    물 사발로 다스렸던

    허기증도 그리워라

    육 남매 쌈박질로

    몸살 앓던 마당에는

    머언 길

    돌아와 보니

    콩 포기만 무성해라.

     

    2019. 9. 8

     

  • 회전목마

    회전목마

     

    야당일 땐 장외 농성 여당일 땐 강압 통과

    바뀌면 또 그 타령 돌고 도는 회전목마

    다 함께 어깨동무로 나라 걱정할 날 있을까.

     

     

    2019. 9. 6

  • 고희古稀 고개

    고희古稀 고개

     

    무엇을 가르쳤나

    나 자신도 모르면서

     

    세월에 떠밀려서

    올라온 고희古稀 고개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강물처럼 내려가리.

  • 가을비

    가을비

     

    새벽 닭 울기 전에

    가을비야 그치거라.

    전화 벨 울릴까봐

    가슴은 조마조마

     

    동해로 가자는 약속

    미루자면 어쩌리.

     

    2019. 9. 2

  • 시 주정酒酊

    시 주정酒酊

     

    달밤에 꽃 그림자

    술잔을 기울이다

    취흥에 두견처럼

    시 주정酒酊을 하여보네.

    시재詩才야 시선詩仙을 따를까

    멋진 흉내만 내어보네.

     

    술기운에 뿌린 시가

    내년 봄에 꽃피울까

    누군가 술에 취해

    내 시를 읊조릴까

    이생에 큰 욕심 없지만

    시 몇 수는 남기고 싶네.

     

    2019. 8. 31

  • 사하촌寺下村

    사하촌寺下村

     

    목탁소리 몇 소절이 마을을 쓸고 간 후

    개 망초 피어나듯 골목마다 맑은 웃음

    내 고향 절 아래 마을 흰 구름 모이는 곳

     

    가끔은 석가불님 미소가 떠내려 와

    어두운 처마 끝에 등불로 피던 마을

    떡 사발 주고받던 담 풀꽃처럼 환한 인정

     

    진달래 망울 트면 날 부르러 오던 남풍

    아버님 한숨으로 영 못 넘던 회재 고개

    풀 향기 등 떠밀어서 넘어오던 인생 고개

     

    말리며 보내는 마음 사랑보다 진하더라.

    어머님 비는 손에 달빛이 휘감겨서

    앞산이 따라다니며 모진 바람 막아줬지.

     

    소년은 흙 빛 잃고 시간 속을 왔건마는

    무심코 흘리고 온 열병 같은 사랑 하나

    죽어도 버리지 못할 젖 내 같은 고향 하나

     

     

    2019. 8. 28

  •  

    저승잠 자다가도

    당신 없으면 금방 알지

    사십 년 찌들었던

    된장 냄새, 김치 냄새

    코끝에 멀어지면서

    몸이 먼저 깨는 걸

     

     

    2019. 8. 27

  • 능소화

    능소화

     

    입 다물고

    참다 참다

    터져버린 볼멘소리

     

    귀담아

    듣다 보면

    송이송이 진한 아픔

     

    아내여 긴 세월 견딘

    인종忍從 벗어 버렸구나.

     

     

    2019.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