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고
온 몸을 꿈틀거렸다.
수줍은 노을이
바다의 볼에
연지를 찍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르르 우르르
함성으로 달려들었다.
밤꽃 냄새가
온 바다를 덮었다.
초승달로 몸을 담그고
경련하는 바다의 몸속에 한 가닥씩
월광을 토해 내었다.
수줍은 노을이
바다의 볼에
연지를 찍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르르 우르르
함성으로 달려들었다.
밤꽃 냄새가
온 바다를 덮었다.
초승달로 몸을 담그고
경련하는 바다의 몸속에 한 가닥씩
월광을 토해 내었다.
아침 해 떠오를 무렵
연꽃이 피면
연꽃 향기 찻잔에 담아 마시고
뻐꾸기 울음 너머 속 숨결에 번져오는
대청호 물비늘
연꽃 그림자
반갑게 내미는 손길에
봄볕 같은 정이 담겨 있어서
미소가 향기로운 연꽃마을 사람들은
연 옆에 서 있으면
그냥 연꽃이 된다.
대청호에서 건너오는 바람들도
연꽃 마을에 와서
연향(蓮香)에 몸을 씻는다.
나도 마음 닦으러 대청호로 가다
이 마을에 들러
도심(都心)에 찌든 얼룩 지우고 돌아온다.
靑年淸羅 嚴基昌
모진 바람 앞에서도
초목처럼 싱싱한 꿈을 접지 않으며
한 번 발걸음 내딛으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너희들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이만큼 와서
한 자락 남은 삶의 비탈이 가파르다고
숨을 헐덕이며 쉬려 하느냐
잠은 달콤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바라보면
네 옆을 걷던 사람들은 까마득히
뒷모습도 보이지 않아
길은 거기서 끊어지고
뒤돌아보는 발자국엔
아프게 달려온 고통의 흔적 헛되이 남아
아물지 않은 상처 화석으로 굳을 것이다
조금만 더 걸어라
가시덤불 우거져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너희들의 정상은
하늘과 어우러져 저 위에서 빛나고 있나니,
세월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더라도
멈추지 않는 사람의 가슴에
더 많이 고일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걸어라
고개는 거의 끝나 가는데
꿈꾸는 것을 그만 멈추려느냐
“아이고 우리 닭. 아이고 우리 닭”
어머님께서 외치시는 소리에 놀라 깨었다. 벌써 새벽이 되어 날이 부옇게 밝았다. 닭장에 뛰어가 보니 큰 닭 두 마리가 없어졌다.
“나쁜 놈들, 약아빠진 놈들……”
이제 와 생각하니 친구들이 잡아왔을 때 왠지 그 닭들이 낯익었던 듯도 하다. 그런데 우리 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닭서리 하다가 발각되어도 자기 아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려고 하는 고 놈들의 속셈을 생각하면 입맛이 썼지만 이제 공범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같이 걱정하고 있는 아들이 범인인줄도 모르고 분해 펄펄 뛰시던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 고향은 쓸쓸해 졌지만, 허전할 때면 가슴 설레고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동풍에 넋을 갈아 깃발로 세운
엄마엄마 울던 아이 풍랑이 혼자 키운
국토의
막내야
해당화 한 송이도 못 피우는 작은 가슴에
무에 그리 한없이 담은 게 많아
오늘도 눈 부릅뜨고
잠 못 이루나
아내의 눈동자는
하늘 담은 옹달샘이다.
때로는 내 마음에 티끌 일어나면
꽃구름으로 피어나서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내여
당신은 내 일상(日常)의 숲을 지켜주는
키 큰 산나리 꽃이다.
하루 종일 동동거리는
당신의 발걸음을 보며
다시 태어나도 당신 곁에 서서
거센 바람 막아주는 나무이고 싶다.
무어라고 지껄이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소리마저 지운다.
지워져서 더욱 빛나는
관음상 입가의 미소처럼
나도 눈보라에 녹아서
돌로 나무로 바람으로 지워지면
갈매기 소리 알아듣는 귀가 열릴까.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시학과 시』창간호(2019년 봄호)
새벽은
은진 미륵불 입가에 번지는
미소로부터 열리고
금강에서 일어선 역사의 바람들은
득안땅을 아우르다가
노성산성에 와서 돌이끼가 되네.
점심 녘 논두렁길 걷다가
들판처럼 가슴 넓은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게.
구수한 입담 속에 햇살처럼
번득이며
핏줄로 이어오는 호국의 정신.
논산의 저녁은
황산벌에 떨어진 꽃다운 원혼들 두런대는
풀꽃 그늘로 진다네.
열려진 차창 틈으로
섬광처럼
개구리 울음 하나 지나갔다.
별똥별처럼
타버리고 다시는 반짝이지 않았다.
칠갑산 큰 어둠은
돌 틈마다 풀꽃으로
개구리 울음 품고 있지만
기침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
가슴을 닫았다.
차창을 더 크게 열어봤지만
청양을 다 지나도록 청양 개구리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열려진 차창 틈으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개구리 울음. 유성처럼 한 번 빛나고는 다시 타오르지 않는 개구리 울음. 칠갑산 골짜기마다 사람들의 기척이라도 들릴까봐 꼭꼭 숨어있는 개구리의 두려움과 슬픔을 생각하며,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횡포가 심한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연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인간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차창 문을 크게 열어봐도 다시는 들리지 않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기다리며, 모처럼의 봄나들이가 아쉽고,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것은 무슨 까닭일까.
왕궁 터 부서진 기와 조각
부서져도 지워지지 않는
백제의 미소 위를 어른거리다가
궁남지 연꽃 속에 향기로 머무는
서동의 숨결 속에
녹아들겠네.
백마강 큰 가슴이 달을 품는 밤
고란사 종소리 실어
잠 못 드는 사람들 베갯머리로 보내주고
낙화암 절벽 위에
한 잎씩 떨어지는 진달래꽃잎
삼천궁녀의 짙붉은 흐느낌을 보겠네.
내가 만일 바람이라면
사비의 하늘 오래오래 떠돌다가
아무데도 가지 않겠네.
부소산성 돌 틈마다 눈물로 돋아
천 년의 세월을 외치고 있는
돌이끼에 초록으로 앉아 역사가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