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빈집

     

    빈집


    봄 햇살 사운대도 대문은 굳게 닫혀

    울안에 혼자 사는 살구꽃 꽃가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목청 돋워 피노라.

  • 빗소리

     

    빗소리


    가을 산 단풍 숲을 빗소리가 씻고 있다.

    선방 문 반 쯤 열고 老松 같은 노 여승이

    빗소리 하나 둘 세며 마음을 비우고 있다.


    비바람 쓸고 간 자리 남아있는 잎새처럼

    한평생 다스려도 삭지 않는 질긴 번뇌

    빗소리 날을 세워서 한 줄기씩 베고 있다.



    2009. 11. 3


  • 보문산-봄

    보문산-봄

     

    비 그치자 보문산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골안개 분칠하는 산기슭 따라 돌며

    바람이 실가지마다 붉은 연지 찍고 있다.

     

    회색빛 산색 속에 연초록이 묻어난다.

    조용한 떨림으로 일어서는 소리들이

    바위 틈, 낙엽 아래서 함성으로 일렁인다.

     

     

  • 가을 편지

    가을 편지

     

    구봉산 산행 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의 화장대에

    몰래 올려 놓았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내 가을 편지이다.

     

    얼핏 연 책갈피에

    내게 보낸 연서 한 장

    곱게 말린 단풍잎에

    배어있는 고운 정성

    아내도 날 사랑한다는

    홍조 어린 답신이다.

     

     

     

  • 여름 끝 무렵

     

    여름 끝 무렵


    국화꽃 멍울 부품도

    가슴 저린 일이어니

    분주한 고추잠자리

    이고 있는 하늘 가로

    손 털고 일어나 가듯

    미련 없이 가는 여름


     

    잠 깬 바람 여울목에

    쓸려가는 뭉게구름

    흥 파한 계곡마다

    돌 틈 가득 쌓인 공허

    보내는 마음 허전해

    눈시울 적셔보네.

    .


    2009. 9.12

  • 어머님 제삿날

     

    어머님 제삿날


    까치소리 몇 소절이

    살구나무 꽃눈을 쪼더니

    해질녘 빈 가지에

    두 세 송이 꽃등 밝혀

    어머니 젖은 목소리

    화향(花香)으로 오시다.


    지방(紙榜)에 반가움 담아

    병풍 아래 모셔놓고

    살아생전 못 드시던

    떡 과일 가득 차렸지만

    향불이 다 사위도록

    줄어들 줄 몰라라.


    빛바랜 추억담을

    갱물 말아 마시면서

    벽 위에 걸려있는

    초로 적 고운 사진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수 없는 세월.










     


  • 落花 紀行

     

    落花 紀行


    섬진강변 매화마을에

    매화꽃이 반쯤 져서


    진 꽃만큼

    시든 바람에

    한숨처럼 묻혀 간 봄


    제 눈물에

    젖은 가랑비

    울음 모아 흐르는 강



  • 단풍

     

    단 풍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뜨겁게 사르려고


    가슴 깊이

    묻었던 사랑

    모닥불로 피워 올려


    피울음

    끓는 아우성

    온 세상을 태운다.


  • 달맞이꽃

     


     달맞이꽃


    예닐곱 살 소녀의

    투정처럼 피어나서


    꽃잎마다 반짝이는

    천 개의 달빛을 받아


    그리움

    안으로 익은

    청청한 저 목소리


     

  • 철조망

     


    <시조>

    철조망


    산줄기 갈라 뻗은

    대진 고속도로 옆


    건넛산 그리움에

    넋 잃은 고라니 한 마리


    몽롱한 눈동자 속에

    피어오르는 오색구름




    밤마다 꿈속에선

    바람에 날개 달아


    그리움 매듭 풀어

    이슬 눈물 뿌렸지만


    새벽녘 꿈 깨어 보면

    건널 수 없는 철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