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가교리

    가교리 

     

    남가섭암 목탁소리 아침을 열고 있다. 

    철승산 솔바람에 향기처럼 번져 나가 

    불심이 깃든 집마다 어둠을 씻어내고 있다. 

     

    살구꽃 몇 송이로 근심을 지운 마을 

    대문 여는 아낙마다 햇살같이 환한 얼굴 

    눈빛에 보내는 웃음 된장처럼 구수한 정. 

     

    마곡천 수태극이 마을을 안고 돌아 

    흰 구름 한 조각에 무릉武陵보다 신비롭다. 

    건너뜸 다복솔 숲에 구구새 울음 날린다 

     

    2012. 2. 23

     

     

     

     

     

  • 永平寺

    永平寺

     

    엄 기 창

     

     

    바라밀경 한 소절이

    구절초로 눈을 틔워

     

    목탁木鐸 소리 한 울림에

    한 송이씩 꽃을 피워

     

    장군산

    골짜기 가득

    퍼져가는 저 범창梵唱 소리

     

     

    2011. 10. 12

  • 소나기

    소나기 

     

    당신이 왔다 가니 도심都心이 맑아졌네.

     

    시루봉 산정山頂이 이웃처럼 가깝구나.

     

    번개로 찢어버리고 다시 빚은 세상아!

     

     

  • 봉숭아

    봉숭아

     

    비 온 후

    우우우

    꽃들의 진한 함성

     

    팬지, 데이지, 사루비아

    화단의 앞줄에 서고

     

    봉숭아 뒷방 할머니처럼

    풀 사이에 숨어 폈다.

     

     

    모종삽에

    담뿍 떠서

    맨 앞줄에 세워본다

     

    남의 땅에 혼자 선 듯

    잔가지가 위태하다.

     

    제 땅을 모두 잃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꽃!

     

    2011. 7. 1

     

     

     

  • 누님 부음 오던 날

    누님 부음 오던 날

     

                엄 기 창

     

     

    조팝꽃 지고

    여울 울어

    봄 하루 시들던 날

     

    회재고개

    비탈길로

    누님의 부음 넘어와

     

    빈 고향 초록 들판에

    가랑비를 뿌리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다 가시고 없는 집에

     

    누님이

    좋아하던

    앵두 혼자 익어간다.

     

    짙붉은 앵두 빛깔에

    넘쳐나는 서러움.

     

     

    2011. 5. 22

     

  • 뜸부기

    뜸부기

     

    저녁노을

    한 모금씩

    물고 와서

    뱉어내어

     

    자운영꽃 속울음을

    텃논 가득 뿌려놓고

     

    온 봄내

    끓는 피 데워

    몸을 푸는 뜸부기

     

    2010. 12. 14

     

     

     

  • 청하계곡에서

    청하계곡에서 

     

    솔 사이로 새는 별을

    소주잔에 동동 띄우고

     

    보름달 곱게 깎아

    떡갈잎에 한 조각 싸서

     

    임 한 잔 마실 때마다

    입에 넣어 주는 밤

     

     

    산은 바람을 불러

    가락을 연주하고

     

    물은 하늘을 담아

    별 세상을 꾸며주네.

     

    임과만 둘 있는 세상

    산과 물은 장식일세.

     

    2010. 11. 30

     

     

     

  • 선물

     

    선물 

     

    고향 산 솔바람을 박씨처럼 물고 가서

     

    작은 누님 무덤가에 총총히 심어놓네요.

     

    첫 제사 선물 삼아서 솔향기도 담아가고.

     

     

    여기 솔바람은 열무김치 맛이다 야

     

    부모님 유택 뒤로 산 뻐꾸기 울던 시절

     

    누님의 그 말소리가 저녁달로 뜨네요.

     

     

    2010. 11. 16

  • 은적암

     

    은적암



    골 깊어 한낮부터

    부엉이는 울어서


    부엉이 울음 따라

    송화 가루 날려서


    담 없는 절 마당으로

    산이 그냥 내려와서


    여승은 염불하다

    끝내는 걸 잊었는지


    부처님은 웃다가

    성내는 걸 잊었는지

    저녁놀 익은 조각이

    꽃비처럼 날린다.


  • 현충일 애상

    현충일 애상

     

     

    묵념의

    나팔소리

    꿈결같은 현충일

     

    물젖은

    할아버지

    눈동자에 도장 찍힌

     

    아파트

    한 동에 걸린

    태극기

    하나,
            둘…,
                        두 –
                               울…….

     

    201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