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그믐달

    그믐달

     

     

    돌무덤에 도라지꽃

    일찍 죽은 형님 영혼

     

    어머니 가슴 속에

    대못으로 박혔더니

     

    창공에

    아픔을 삭혀

    밝혀놓은 등불 하나

     

     

     

    2016. 11. 24

  • 가을 산행

    가을 산행

     

     

    오욕을 털어내니

    가지들 정결하다

    은밀한 골물 소리

    속진俗塵을 닦고 있나

    지나온 길 돌아보니

    허물만 깔려있네.

     

    버리고 다 버려도

    사랑만은 못 버려서

    하나 남은 단풍잎이

    유독 붉게 익어있다.

    불타는 외침만 한 등

    빈 산 환히 비춘다.

     

    2016. 11. 16

     

  • 비둘기

    비둘기

     

     

    허기진

    비둘기가

    눈발을 쪼고 있다.

     

    아무리 삼켜 봐도

    요기가 안 되는 눈

     

    십이월 바람의 칼날

    서성이는 눈동자

     

     

    2016. 11. 7

  • 외연도 가는 길

    외연도 가는 길

     

     

    파도의 칼끝마다 햇살을 머금었다.

    등 푸른 바다가 온통 불 밭이다.

    내 삶의 덮개를 열고 우울증을 태운다.

     

    달려온 뒷모습을 서둘러 지우는 배

    접히는 바닷길 끝 홰를 치는 외연도여

    포구에 갈매기 울음 먼저 나와 맞는다.

     

    2016. 10. 19

     

  • 추석 무렵

    추석 무렵

     

     

    들녘마다 음표音標들이 풍년가로 익어있다

    귀뚜리 울음에 흥이 절로 녹아나서

    벼운 실바람에도 출렁이는 어깨춤

     

    동산 위로 내민 달은 알이 통통 들어찼다.

    아내는 냉큼 따서 차례 상에 놓자하나

    온 세상 채워줄 빛을 나만 두고 즐기리.

     

     

    2016. 9. 9

  • 석불石佛

    석불石佛

     

     

    눈에는

    동자가 없다.

    시름만 가득 들어찼다.

     

    코도 귀도 떼어주고

    초점焦點 없는 눈만 남아

     

    세상의

    온갖 번뇌를

    안개처럼 둘렀다.

     

     

    2016. 7. 30

  • 산나리꽃

    산나리꽃

     

     

    네가 피자 산안개가

    말갛게 벗겨졌다.

     

    십 년 넘게 소식 한 통

    못 건네는 제자들아

     

    괜찮다.

    나리꽃처럼

    네 주위를 밝히거라.

     

    2016. 7. 1

    문학사랑2016년 가을호(117)

  • 고촉사

    고촉사高燭寺

     

     

    산문이 따로 없다

    안기면 다 부처님 품

    골 안에 들어서면

    목탁소리 마중 나와

    관음경 한 자락으로

    시린 마음 품어준다

     

    수미산이 어디 있나

    여기가 부처님 집

    약사불 넉넉한 미소

    등불처럼 반겨주네

    세상에 가장 신령神靈

    부처님이 머무는 절

     

  • 민들레

    민들레

     

     

    깨어진 보도블록

    돋아난 뽀얀 새살

     

    아픔을 밀어내고

    한두 송이 꽃을 피워

     

    세상의 

    흉한 상처를

    감싸주고 있구나

     

     

  • 인동초忍冬草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허물고 간 산 밑 빈 집 담 자락에

    인동초忍冬草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적막

    그리움 안으로 익어 하얀 꽃을 피웠다.

     

    우측으로 감아 가면 정든 얼굴 떠오를까

    대문 닫힌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

    기다림 눈물로 삭아 노랗게 꽃잎 바랬다.


    임자 없는 몸이라서 사연 더욱 만발했나

    소쩍새 울음에도 반색하며 떨고있다.

    벌 나비 담아가다 만 향기 자욱히 퍼진다.

     


    2016.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