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입춘立春 일기

    입춘立春 일기

     

     

    대문 앞 콩 뿌리기보다 마음 먼저 닦고 보자

    오신채五辛菜 먹기보다 삶의 쓴맛 깨우쳐서

    입춘첩立春帖 붙이기 전에 이웃집에 쌀 한 됫박

     

     

    2018. 3. 14

  • 우수雨水 일기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 산정호수의 구름

    산정호수의 구름

     

     

    어제 벙근 구름 건져

    내 어항에 심었는데

    오늘 아침 꽃구름이

    수련처럼 또 피어났네.

    뿌리 채 곱게 캐어서

    네 마음에 전하네.

     

    잔뿌리도 상하잖게

    네 울안에 모종하게.

    서울의 하늘에서

    이런 구름 보았는가.

    사랑을 일고 또 일어

    산의 숨결로 빚은 구름

     

     

    2018. 2. 2

  • 설일雪日

    설일雪日

     

     

    산도 숨을 멈추었다.

    하얀 눈꽃 위의 적막

     

    햇살도 눈을 감고

    바람도 날개 접어

     

    문 열면 깨어질까봐

    문고리 잡고 서 있다.

     

     

    2018. 1. 31

     

  • 매화 연서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 방포 일몰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 비닐 편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 무상無常

    무상無常

     

     

    다랑논엔 벼 대신 병꽃만 피어있다.

    할아버지 발걸음 끊어진 지 너댓 해

    두견새 울음소리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떡갈나무 몇 그루 자리 잡고 누워있다.

    멧돼지 목욕하러 밤마다 내려오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해가 쉬이 지는 마을

     

     

    2017. 12. 4

  • 홍시

    홍시

     

     

    따지 마라, 알몸으로

    매달릴 형벌이다

     

    온 여름 마신 햇살

    펄펄 끓는 저 육신을

     

    한 조각

    남을 때까지

    보시布施할 업연이다.

     

     

    2017. 10. 26

    한국현대시2017 하반기호

  • 세월의 그림자

    세월의 그림자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이 얇아진다.

    손 한 번만 잡아주면 마음을 다 주고 싶고

    아픈 말 한 마디에도 쉽게 멍이 든다.

     

     

    2017.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