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사랑

    사랑

     

    달빛으로 새끼 꼬아

    당신 사랑 엮어 걸면

    혼자 새울 그믐밤에

    등불인 양 빛을 내어

    어두운 마음 밭머리

    밝혀주고 있으리.

     

     

    2019. 8. 6

     

  • 어느 여름날

    어느 여름날

     

    호박 덩굴 감아 올라간 흙담 밑이 고향이다.

    말잠자리 깊이 든 잠 한 토막 끊어내어

    무작정 시집보내던 어린 날의 풋 장난

     

    담 따라 옥자 순자 송이송이 피어나면

    일없이 호박벌처럼 온 종일 헤매던 골목

    밥 먹자 부르던 엄마 감나무에 걸린 노을

     

    건넛산 부엉이 울음 방죽엔 처녀 귀신

    쪽 달빛 한 줌이면 콧김으로 날려버린

    그 세월 먼 듯 가까이 안개처럼 아른댄다.

     

     

    2019. 7. 31

  • 황혼 무렵

    황혼 무렵

     

     

    사랑인지 미움인지

    아리송한 네 얼굴 빛

     

    다가갈까 물러설까

    우리 사랑 황혼 무렵

     

    역광에

    어른거리는

    네 마음의 실루엣

     

     

    2019. 5. 29

  • 목련 꽃 봉오리

    목련 꽃봉오리

     

     

    터지겠다.

    펑 하고

    입김만 호 불어도

     

    한겨울 칼바람에

    한 혼 깎고 벼려

     

    삼천리

    한 몸으로 울릴

    옥양목 빛 함성들아.

     

     

    2019. 3. 26

  • 삼월

    삼월

     

     

    산수유 뽀얀 숨결

    언 가슴 녹인 불씨

    비둘기 맨발에도

    꽃신 한 짝 신겨줄까

    잊었던 노래 가지마다

    두런두런 피는 꽃등

     

    털모자 벗으며

    시든 사랑에 물을 주네.

    듬성한 머리 사이

    꽃대 한 촉 싹이 틀까.

    신바람 나비 춤 앞세워

    분홍 발로 오는 삼월

     

     

    2019. 3. 1

  • 미소가 따라와서

    미소가 따라와서

     

     

    엊그제 마곡사

    석가 불 그 미소가

    내 꿈속 비좁은

    골목까지 따라와서

    아이 참, 욕하려 해도

    빙그레 웃음만

     

    그러게 살던 대로

    막 살면 되는 게지

    마음속에 부처는

    왜 모시자 욕심 부려

    아이고, 이제 큰일 났네

    욕도 한 번 못하고

     

     

    2019. 3. 6

  • 서해의 저녁

    서해의 저녁

     

     

    바다의

    비린내를

    노릇노릇 구워놓고

    지는 해

    노른자처럼

    소주잔에 동동 띄워

    마신다.

    귀가 열린다.

    물새들의 속삭임에

     

    기우는

    하루해를

    잡아서 무엇 하리.

    잔 부딪칠

    사람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파도로

    어둠 흔들어

    잠 못 드는 밤바다

     

     

    2019. 2. 17

  •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사색의 파편破片인가

    시간의 대화對話인가

    깜빡 든 잠 속에서

    한 점으로 일어서서

    온 세상

    빗질하려고

    부스대는 날갯짓

     

    가고 오는 인연들이

    정결하게 씻기는데

    저 큰 붓질 한 번에

    인간사 다 지워지고

    깨다 만

    꿈결 속에서

    머언 산만 솟는다.

     

     

    2018. 12. 27

  •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