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시조

  • 추석 무렵

    추석 무렵

     

     

    들녘마다 음표音標들이 풍년가로 익어있다

    귀뚜리 울음에 흥이 절로 녹아나서

    벼운 실바람에도 출렁이는 어깨춤

     

    동산 위로 내민 달은 알이 통통 들어찼다.

    아내는 냉큼 따서 차례 상에 놓자하나

    온 세상 채워줄 빛을 나만 두고 즐기리.

     

     

    2016. 9. 9

  • 석불石佛

    석불石佛

     

     

    눈에는

    동자가 없다.

    시름만 가득 들어찼다.

     

    코도 귀도 떼어주고

    초점焦點 없는 눈만 남아

     

    세상의

    온갖 번뇌를

    안개처럼 둘렀다.

     

     

    2016. 7. 30

  • 산나리꽃

    산나리꽃

     

     

    네가 피자 산안개가

    말갛게 벗겨졌다.

     

    십 년 넘게 소식 한 통

    못 건네는 제자들아

     

    괜찮다.

    나리꽃처럼

    네 주위를 밝히거라.

     

    2016. 7. 1

    문학사랑2016년 가을호(117)

  • 고촉사

    고촉사高燭寺

     

     

    산문이 따로 없다

    안기면 다 부처님 품

    골 안에 들어서면

    목탁소리 마중 나와

    관음경 한 자락으로

    시린 마음 품어준다

     

    수미산이 어디 있나

    여기가 부처님 집

    약사불 넉넉한 미소

    등불처럼 반겨주네

    세상에 가장 신령神靈

    부처님이 머무는 절

     

  • 민들레

    민들레

     

     

    깨어진 보도블록

    돋아난 뽀얀 새살

     

    아픔을 밀어내고

    한두 송이 꽃을 피워

     

    세상의 

    흉한 상처를

    감싸주고 있구나

     

     

  • 인동초忍冬草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허물고 간 산 밑 빈 집 담 자락에

    인동초忍冬草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적막

    그리움 안으로 익어 하얀 꽃을 피웠다.

     

    우측으로 감아 가면 정든 얼굴 떠오를까

    대문 닫힌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

    기다림 눈물로 삭아 노랗게 꽃잎 바랬다.


    임자 없는 몸이라서 사연 더욱 만발했나

    소쩍새 울음에도 반색하며 떨고있다.

    벌 나비 담아가다 만 향기 자욱히 퍼진다.

     


    2016. 3.22

     

  • 목련 이제二題

    목련 이제二題

     

     

    자목련

     

    서설瑞雪로 씻은

    지등紙燈이다.

    하늘 물살

    불 밝히는

     

    아직도 매운 세상

    누군가의 바람인가

     

    겨울 끝

    시린 인심을

    맑은 향기로 데운다.

     

     

    백목련

     

    옥양목 치마저고리

    장롱 속에 묻어 놓고

     

    겨우내

    설렘을

    가꿔 오신 어머님

     

    봄 오자

    곱게 차려입고

    봄나들이 나오셨네.

     

     

     

  • 키질의 법칙

    키질의 법칙

     

     

    가벼운 검불들 새처럼 날아가고

    무거운 알곡들만 사락대며 남아있다.

    어머니 키를 까불 때 변치 않는 법칙이다.

     

    머리 헐고 코 흘리고 지독히 말 안 들어도

    어머니 가슴 속에 우리 형젠 알곡이다.

    키에서 벗어달 때면 불을 켜고 찾는다

  • 자목련

    자목련

     

     

    여리고 성긴 몸이 된바람에 숨 멎을까

    짚으로 싸매주며 긴 겨울 잠 설쳤더니

    아이의 첫 울음같이 빚어 켜든 달 한 등

  • 보리수나무

    보리수

     

     

    아침에는 독경 소리 저녁에는 풍경 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여 묵언 참선 하더니

    깨달음 동그랗게 키워 초록 열매 달았다

     

    내 안에 나를 익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번뇌를 사르었다 법열이 타올랐다

    황금빛 환희를 꿰어 염주 알을 엮는다

     

     

     

    2015.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