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07년 07월

  • 공산성(公山城)에서

     

    공산성(公山城)에서

    백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고추잠자리 맴돌아 익어 가는

    단풍나무 숲

    아랫마을로


    신라관광 몇 대

    조을 듯 들어서고


    하늘이 더 깊숙이

    세상 담아주는

    무령왕릉 가는 길 위에


    역사의 수레바퀴로 날리는

    신문지 한 장……


    무너진 성 자락 이끼마다 서린

    시간의 향기

    초가을 맑은 햇살에

    헹궈낸 강물 소리로

    목을 축이면


    나는

    옥양목빛 피가 흐르는

    아사달이 된다

  •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석등(石燈) 안

    찰람찰람 고인 고요를

    새벽달이 갸웃이 훔쳐보고 있다.


    파도 소리에 씻겨진

    동백꽃 봉오리마다

    세상 밝히는 꽃불을 켜면


    먼 수평선 일어서는 눈부신 평화(平和)

    관음상 입가에 살포시

    미소로 번져….

  • 낙화

     

    낙화

    꽃등인양 불 밝히고

    꽃샘바람 속에 서성대더니


    해 기울자 날개 접고

    내려지는 백목련꽃


    바르르 떠는 꽃가지

    봄이 지는 아쉬움


    달빛은 꽃그늘에

    화향을 깔아두고


    술잔마다 내려앉아

    설렘으로 뒤척이네


    반가운 친구와 앉아

    지는 봄을 마신다

  • 계족산 노을

     

    계족산 노을

    마음 시린 날 저녁

    계족산 정상에 서면

    어린 날 봉숭아꽃

    지천으로 날리는 하늘

    계룡산 넘어가는 햇살 속에 번진

    하늘의 미소가

    용화사 저녁 종소리와 만나

    환한 웃음으로 핀다.

    성벽의 이끼마다 얼룽이는

    노을에 몸을 담그면

    삶은 허허로운 바람 같은 것

    눈물 많은 사람들 꿈밭을 덮어주라는

    어머님 손길같이 따스한 홑이불 하나

    하늘의 음성


    e-백문학3(2020)

  • 고향

     

    고향

    아이들 웃음소리

    넘쳐나던 고샅 머리

    밤하늘 별빛 새는

    까치집 위의 적막

    남가섭암 목탁소리만

    다독이고 있구나.

  • 아내에게-생일을 축하하며

     

    아내에게

    ― 생일을 축하하며

    아내의 향기는

    청국장 맛이다.

    하루의 눈금 위를 초침처럼

    수없이 더듬으며

    가문 날에도 흠뻑 젖어 있는

    당신의 손은

    나이보다 더 많은 주름살로 덮여 있다.

    식구들 생일은 꼼꼼히 챙기며

    자기의 생일은 잊어버리고

    신 새벽 아이들 아침 준비로

    미역국도 굶은 아내여

    생활의 아픈 멍울 가슴으로 싸 안으며

    얼굴엔 항시 햇살 같은 웃음으로 집안을 밝혀

    바라보면 고향같이 편안한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일곱 살 철부지가 되지만

    오늘은

    소중한 줄 몰라서 더욱 소중한

    단풍이 곱게 물든 당신의 가을 가슴에

    장미꽃 한 다발 안겨주리라.  

    색색의 눈빛으로 말하는 꽃들의 눈짓에 담아

    마음속에 묻어 둔 사랑의 촛불을 밝혀

    내가 지워 준 생활의 짐을 벗기고

    웃음 속에 내비치는 외로움의 그늘을 지워 주리라.



  • 대청호 낚시질

     

    대청호 낚시질

    놓아두고 간 그리움들이

    물이끼로 돋아올 때쯤


    호심에

    줄을 던지면

    삭지 못한 아픔들이 입질 하네.


    물비늘 반짝이는 옛집 마당에서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건져올리고


    진달래꽃 낯붉히던

    이웃집 누이의 속마음도 건져올리고….


    짐을 싸들고 뒤돌아보며

    돌아 나설 때

    안타깝게 손 흔들던 느티나무 언저리


    고향은 거기 가라앉아서

    천 년 산 그림자로 굳어 있네. 

  • 마곡사

     

          마곡사

          연

        화  교

      건 너 서 면

    솔바람 풍경소리

         향내

       서    린

      잎 새 마 다

    불경 소리 담겨 있고

          법

        계  를

      지키고 서서

    침묵하는 오층석탑


    깨어진 돌부처에

    염화미소 어리인 땅


    잠 못 드는 노승의

    천수경에 달은 지고


    불심은 태화천에 녹아

    사바세계로 흐른다


  • 공주(公州)에서

     

    공주(公州)에서

    친구여!

    막걸리 몇 잔에 취해 별을 줍던

    금강 변 백사장엔 오늘도 별이 내리느니.


    가을이 석양빛 꽃물로

    곱게 물들인 산성공원 오솔길로는

    영은암 종소리가 늦바람으로 달려가느니.


    몸이 떠나 삼십 년

    마음마저 멀어져

    목소리 아득한 나의 친구여


    다시 금강 변 모래밭에 서면

    그리운 모습들 보일 듯하여

    갈바람 갈피에 숨어 찾아왔더니


    강물은 어제처럼 흘러가는데

    정다운 얼굴들 보이지 않네.


    知天命 지나보낸 우리 나이에

    무슨 더 큰 욕심 있으랴.

    추억이 곱게 접히는 밤에

    다시  어깨동무하고 막걸리 집 찾아

    흥청거리며 걷는 발길엔


    스물 다섯에 놓아두고 간

    우리 젊음이

    프라타너스 잎사귀처럼 지천으로 밟히리.

  • 목숨

     

    목숨

    저 그늘 외로운 길

    햇살 따라 가다 보면

    수줍게 입을 벌린

    진달래꽃 한 이파리

    한겨울 딛고 일어선

    여린 목숨 하나.


    산 빛 아직 익지 않은

    초 삼월 바람 속에

    목청 돋워 봄 부르는

    등대로 피었느냐

    한 모금 물빛 향기로

    세상 밝히는 목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