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07년 07월

  • 고무신― 思母 十題 3

     

    고무신

    ― 思母 十題 3

    화톳불 연기가

    밤 새 울음소리 지우고 있다.


    사잣밥상 아래

    백목련 꽃 두어 이파리

    어머님이 벗어 던진 이승의 신발


    까맣게 지워진 세상이라

    더욱 하이얀

    한 켤레

    적막을 신고

    나의 유년시절은 떠나고 있다.


    벗겨도 벗겨도 추억의 껍질 남아 있는

    고향집 뜰에

    오늘도 내 어린 날 살구꽃은 지는데


    어느새 이만큼 걸어와 뒤돌아보는

    지명(知命)의 내 머리칼에

    거뭇거뭇 남아 있는 어리광 싣고 가려고

    밤 새 울음소리 지워진 세상

    어머님 고무신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 운상(運喪) ― 思母 十題 2

     

    운상(運喪)

    ― 思母 十題 2

    잔이 내려졌다. 발인제도 끝났다.

    상두꾼들은 꽃상여를 메고

    마당을 한 바퀴 비잉 돈다.

    다시는 못 돌아올 문을 나서면

    상두꾼들 노래 소리에 곡소리는 묻히고

    철없는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젯상 앞의 떡들을 들고 뛰는구나.

    뜰 앞의 살구나무는 몇 잎

    꽃잎을 뿌려 손을 흔들고

    한 발짝 한 발짝씩 떠나가는 길

    다시 못 올 청산인데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고 웃고 떠들며

    인생의 또 한 고개를 넘는다.

    오르막길 오를 때마다 상여는 멈춰 서고

    상주들은 너도나도 돈을 거는데

    어머님은 빈 손 맨발로 떠나

    저승의 어느 주막에서 울고 있을까.

    눈물로 씻고 보면 생전에 걷던

    초록빛 발자국 점점이 찍힌 길

    요령잡이 만가소리 점점 빨라져

    조객들 어깨춤 들썩이는 사이로

    어머님 흔적 지우는 연기

    내 가슴으로만 내 가슴으로만 따라 오는데

    두견새 울음소리로 핏물 젖은 곡을 할꺼나

    푸른 봄 하늘에

    눈물을 말릴꺼나.

  • 임종 ― 思母 十題 1

     

    임종

                                   ― 思母 十題 1

    까마귀 울음소리가 물고 가는

    어머님 이름

    간절한 눈물로 피워낸

    진달래꽃 수만 송이로도

    어머님 발걸음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 놓고 떠나시는 어머님 빈 손

    육 남매를 묶어 놓던

    분홍빛 질긴 끈 위에

    우리는 하나씩 손을 얹어 드렸습니다.

    철성산 산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어스름 따라

    남가섭암 목탁 소리가 내려옵니다.

    우리를 위해 부처님께 비시던 입술은 굳어

    아무 말씀도 하실 수 없고

    이제 어머님을 위해 내가 두 손을 모아봅니다.

    시냇물들은 어제처럼

    제 몸들을 부딪쳐 거품을 피워내고

    어머님을 위해 서둘러 달려온 봄은

    버들강아지 가지마다

    몸부림치며 불꽃 피우는데

    어머님 이름이 지워지자

    고향 빛깔은

    막막한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 정안수

     

    제2부

    어머님께 드리는 노래



    진달래 개나리

    생기 있게 피어나는 봄날,

    세상 일 모두 놓으시고

    훌훌히 떠나신 어머님께

    이 작은 노래를 바칩니다.


    정안수

    부엉이 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이지러진 새벽달빛 창호지에 창백하고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어머님의 합장한 손.


    한 대접 정안수에 밤 하늘 별을 담아

    새벽녘 꿈을 헹궈 자식들 복 비는 마음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 


    소쩍새 울음 따라 꽃신 신고 떠났어도

    인생 길 어두운 밤 문득문득 밝혀주는

    정안수 대접에 담긴 어머님의 큰사랑

  • 대전(大田)

     

    대전(大田)

    계룡산 산자락 아래

    늘 넉넉한 마음으로

    순하디순한 사람들 모여 사는 곳


    백제의 순결이 핏줄마다 남아 있어서

    양남(兩南)에서 올라오는 억센 바람도

    한밭에서 닦여지면

    지순한 목소리가 된다.


    금강 물도 여기 와서는

    낮은 음성으로 흘러가지만

    낮은 곳에서 빛처럼 일어서서

    무너지지 않는 큰 힘이여!


    가슴 넓은 사람끼리 어깨동무하고

    우리 이웃들을 서로 아끼며

    골목마다 웃음소리 넘쳐나게 하자. 

  • 하회탈

     

    하회탈

    이노옴

    호령하면 입 꼬리에

    미소 일어


    봄 호수에 물결 지듯

    이랑이랑

    번지더니


    하회탈

    온 얼굴 가득

    햇살웃음 익었다.


    지워도

    날이 서는 아픔을

    다독이며


    질펀한 농마당엔

    신분도

    수유인걸

    한 세상

    흥타령으로

    슬픔 맑게 씻은 얼굴.

  • 조선 소나무

     

    조선 소나무

    등 굽혀

    팔을 벌려

    새 둥지 품에 안고


    골물소리 모아다가

    산 정기를 빚어내어


    청청한

    저 목소리로

    산을 지키는 어머니.


    절벽에

    휘늘어져

    인간을 굽어보며


    하늘 음성 모아다가

    발밑에 지란을 길러


    산 마음

    바람에 실어

    물 아래 마을로 띄운다

  • 정(情)

     

    정(情)

    가난해도

    웃음소리가 늘 담을 넘어오는 집은

    앞마당에 햇살이 더 오래 머물고


    햇살이 달궈놓은 울타리 틈틈마다

    호박처럼 사랑이

    더 실하게

    여물고……


  • 대추

     

    대추

    초록빛 그늘 뒤에 숨어

    한여름 햇살 받아


    단 맛으로 달구어져

    부리부리 익은 사랑


    정염은 두 볼에 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소나무들도

    풍류를 알아

    개성 있게 들 마주 섰다.


    균열(龜裂)진 껍질마다

    옛 목소리 어리었다.


    여름날

    오후의 정적을

    매미소리 파도친다.


    다 가고 없는 정자에

    서린

    뜬구름 그림자여


    부석사 종소리가

    물소리에 녹아 있어


    세월만

    흘러간 뜰에

    붉은 꽃은 또 피어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