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제2시조집-거꾸로 선 나무

  • 서해의 저녁

    서해의 저녁

     

     

    바다의

    비린내를

    노릇노릇 구워놓고

    지는 해

    노른자처럼

    소주잔에 동동 띄워

    마신다.

    귀가 열린다.

    물새들의 속삭임에

     

    기우는

    하루해를

    잡아서 무엇 하리.

    잔 부딪칠

    사람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파도로

    어둠 흔들어

    잠 못 드는 밤바다

     

     

    2019. 2. 17

  •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사색의 파편破片인가

    시간의 대화對話인가

    깜빡 든 잠 속에서

    한 점으로 일어서서

    온 세상

    빗질하려고

    부스대는 날갯짓

     

    가고 오는 인연들이

    정결하게 씻기는데

    저 큰 붓질 한 번에

    인간사 다 지워지고

    깨다 만

    꿈결 속에서

    머언 산만 솟는다.

     

     

    2018. 12. 27

  •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 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 딸 바보

    딸 바보

     

     

    아빠랑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엔

    내 얼굴만 가득가득 담겼네요.

     

    아빠는

    어떤 꽃보다

    내가 제일 예쁘대요.

     

     

    2018. 8. 11

  • 가시연

    가시연

     

     

    예쁘고 고운 것은

    눈만 흘겨도 쉬이 아파

     

    물 저만큼 터를 잡고

    완고한 장창처럼

     

    가시를

    세운 후에야

    자줏빛 저 환한 웃음

     

     

    2018. 8. 2

  • 여름날 오후

    여름날 오후

     

     

    먹 오디 빛 호박잎 그늘

    실잠자리 깊이 든 잠

     

    빈 고샅 혼자 걷다

    적막에 물릴 때 쯤

     

    반쯤 연 사립 안에서

    나직하게 암탉 소리

     


    2018. 7. 5

     

     

     

     

  • 계곡에서

    계곡에서

     

     

    물소리 그리다가

    오수午睡에 잠긴 날에

     

    풀 바람 꽃향기도

    붓질 없이 숨결 틔워

     

    도화지

    맑은 여백엔

    산이 풍덩 빠져 있다.

     

     

    201`8.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