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5년 10월

  • 삼척항에서

    삼척항에서

     

     

    달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만선滿船의 달빛을 바다에 부려놓았다.

    파도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

    나는 야성野性의 포말泡沫이 한눈에 보이는

    선창가 횟집에서

    바다의 살점을 씹어가면서

    시든 젊음의 등잔에 불을 밝힌다.

    ! 바위의 심장에 뿌리박고

    사랑으로 피어난

    한 송이 해당화이고 싶어라.

    금박의 꽃술마다 수로水路의 유혹으로 익어

    불타는 열매를 맺고 싶어라.

    오십천으로 떠내려 온 태백산

    봉우리마다

    한 등씩 반짝이는 별을 걸면서

    모닥불처럼 뜨거운 정라항 열기에 취해

    잠들지 못한다.

    밤새도록 내 핏속에서

    질주하는 대양의 바람소리가 들린다.

     

    2015. 10. 29

    <대전문학> 70호(2015년 가을호)

    시문학598(20215월호)

     

  • 죽림竹林의 저녁

    죽림竹林의 저녁

     

     

    있고 술 있으면

    내 집이 죽림竹林이지

     

    바람에 씻긴 달을

    맛있게 시로 깎아

     

    아끼는 술친구 불러

    술안주로 내놓다.

     

     

    2015. 10. 15

  • 사곡 장날

    사곡 장날

                엄 기 창

     

     

    이틀, 이레 아침이면

    수탉보다 먼저 잠이 깼다.

     

    어머니 손잡고 장에 가는 날엔

    회재 넘어 시오리 산길도

    걸음이 가뿐했다.

     

    팔 것은 달걀 몇 줄에

    콩 보리 서너 되

    등유를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빨고 빨아서 대만 남은

    아이스케키 입에 물고

    태평소 가락에 어깨 들썩이며

    써꺼스 마당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는 빈 주머니로

    살 것도 없이

    장터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점심 짜장면 한 그릇은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소원,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이 맺힌 어머니는

    짜장면 대신 얘기책은 꼭 샀고

     

    돌아가는 길 내내

    알록달록한 호기심으로

    숙향전 숙영낭자전의 주인공 되어

    어머니에게 짜장면 배터지게 사주는 꿈을 꿨다.

     

    2015.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