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제 1시집-서울의 천둥

  • 山 속의 찻집

    山 속의 찻집

    淸羅 嚴基昌
    구천동 돌아오는 물소리가
    꿈결 같은
    산 속의 찻집

    엽차를 내놓는 主人의
    눈빛 속에
    아련히 산수리치 냄새가 풍기고

    철이른 눈발이
    새소리처럼 반짝이는
    정결하게 가라앉은 산의 가리마

    무엇을 위해서 뛰고 있는가?
    반쯤 감긴 잠 속으로
    돌 돌 돌
    스며오는 맑은 물소리

    찻잔 속에 가라앉은
    세상이
    꿈 밖에 멀다.

  • 아침

    아침

    淸羅 嚴基昌
    계룡산 쪽으로 문을 열리

    핏줄 속을 졸졸졸
    도랑물 소리로 울리게 하면
    뿌리 끝 어디엔가 아슴아슴 누워 있던
    내 어릴적
    칡맛 같은 정신이 살아나서

    그대가 내 그림자를 밟고
    문패를 달고 있는 나무라지만
    우리가 맺은 이 진한 고리로
    목탁 소리를 심어 그대 앞길 빌어 주리

    한 방울 이슬에 갇혀
    떨어지는 아침이라도
    계룡산 쪽으로 문을 열리

    마음을 비워 놓고
    큰 산이 되리

  • 달맞이

    달맞이

    淸羅
    嚴基昌
    보름이 와서
    보문산 숲속으로 두둥실 달이 솟았다.

    칼바람 들판
    깡통 속에 불을 사르며
    흥겨운 어깨춤 노랫가락
    고향은 어디에도 없고

    연을 잃어버려
    꿈도 없는
    콩나물 같은 내 아이 둘

    올해는 헐멋은 가슴에
    전설같은
    이 애비의 어릴적 보름달을 안아라.

    심심풀이로 꽃을 꺾는
    네 통통한 손으로 애비의 손 잡고
    두엄 냄새 풋풋한 골목이 있어
    인정도 있는
    아버지의 어릴 적 고향으로 가자.

  • 省墓

    省墓

    淸羅
    嚴基昌
    상여 뒤 따르며 울 때는
    솔방울마다 요령 소리로 울어
    하늘이 무너지더니
    남같이 낯설어진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아버님 무덤에 머리 숙인다.
    봉분엔 햇살이 잘 고이고
    묘지 옆 참나무 썩은 등걸에
    영자 버섯으로 피어난 자식 걱정
    ‘저승은 늘 춥고 바람 불 텐데
    제 염려 거두시지요’
    두 번 절하고 올려다 보면
    在靑龍 石白虎머리 위로
    상현달 하나 나를 지켜 보고
    돌아서 가는 자욱마다 채워주는
    허전한 저녁 어스름,
    아버님 음성…
  • 아버님前上書

    아버님前上書

    淸羅
    嚴基昌
    아버님 목소리 땅에 묻던 날
    대밭에서는
    하루종일 대순이 돋았습니다.
    한 줄금 내린 소나기로
    목타던 대지가 젖어
    취나물 향기 이내처럼 번지고
    꾀꼬리 소리도 윤기 있게 반짝이며
    개나리꽃 빈 가지에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초승달 질 무렵
    초승달 신고
    뒤돌아보며 강 건너가서
    착하게 사신 생애 기름으로 태워
    이승의 봄 밝히는 등이 되셨나…
    철성산 풀빛 짙어오는
    풀빛 속이나
    버들강아지 물오르는 태화천
    물소리 속에
    아버님 모습을 늘 뵙니다.
  • 화장터에서

    화장터에서

    淸羅 嚴基昌
    까마귀 떼들이 요령 소리로
    솟아오른다.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들이
    반역의 창날을 세워
    무심한 황혼을 꿰고 있다.
    막차도 끊어지고
    여기는
    구구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세상
    무너진 것은 무너진대로
    어둠의 저편 나라에 빛난다지만
    喪杖처럼 늘어선 대숲을 보며
    우리는 쓸쓸하게
    꺾인 이름의 생애에 꽃을 뿌린다.
    반딧불들이 어둠의 옷고름을 풀면
    한 이름은 불타서 달맞이꽃이 되고
    달맞이꽃은 시들어
    어둠이 된다.
  • 귀향

    귀향

    淸羅
    嚴基昌
    잊지 않았는데
    한 번 오기 어렵더이다.
    회재 마루에 올라서자
    고향의 나무들이 만 개의 손을 흔들고
    옛집 앞 복사꽃 가지마다
    점화하는
    호들갑스런 산까치 소리.
    황금빛 석양이 머리칼 풀어헤친
    산비듬나무 아래 내 여울엔
    대전서부터 따라온 낮달이 목욕하고 있다
    모자를 벗으며
    허리 굽히고 바라보면
    말끔히 씻긴 달처럼 내가 서 있고
    돌아온 내 손이 빈손이라
    친구야
    흙묻은 네 손을 맞잡을 수 있다.
  • ‘꽃님이’ 식당에서

    ‘꽃님이’ 식당에서

    淸羅
    嚴基昌
    햇살은 그냥 햇살인데
    닿는 살갗마다 환한 아우성으로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엊그제 중앙로
    사람들 사이에서 깊어가던 외로움이
    광막한 대청호 눈빛에 녹아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반짝이는 물결마다
    물빝에 묻는 이야기가 살아나고
    어느 골짜기 무슨 새소리가 청청한 정신으로 녹아 있기에
    가슴에 품은 철새들 죽지마다
    말간 하늘이 내려와 있다.
    구름 띄워 마시는 술 한 잔 취기에
    아픔은 모두 버리고 가려 하느니
    내일아침 몇 가지 화학 약품에 섞여
    다시 내 심장 속으로 들어온다 해도
    아, 아, 물밑에서 어둠인 채로
    하늘의 마음 손짓하는 삼 그림자여
    버릴 것은 모두 버리고 가려 하느니
    아득한 세월의 공간을 응시하며
    서로 손잡고 초록빛 노래 교환하는 나무들 사이
    나도 잠시 나무로 서 있다가
    저녁별로 눈뜨는
    청청한 저 목소리 담아 가려 하느니
  • 금강

    금강

    淸羅
    嚴基昌
    하늘의 맑은 마음 한 자락
    내려와 손을 씻는 비단가람
    물빛 속에는

    어릴 때 잃어버린 내 따오기 소리
    밤마다 빈집 밝혀 지켜주던
    달빛의 눈물이 녹아 있다.

    정다운 물들이 어깨동무하고
    줄지어 도란도란 흐르고 있기에
    인정도 맑아져 구천동 물소리처럼 반짝이며 살아나는
    여울에 귀를 담그면

    삼베치마 덮고 초록빛 꿈꾸던
    어머니 젖내같은 물이여,
    담 너머로 떡사발 주고 받던
    내 이웃 같은 물이여

    오래 보지 않아도
    그 노래 그 물빛 마음에 젖어
    눈감으면 나직이 우는 가람이여

  • 세월

    세월

    淸羅
    嚴基昌

    어릴 때 떠내려간
    태화산 그림자를 건지려고
    서해 바다에 갔었네.

    내 보오얀 솜털로 꿈 갈던
    소나무 위엔
    갈매기가 집 틀어 살고 있었네.

    번지 없이 띄워 보낸
    내 풀꽃은
    흔적이 없고

    맨발 위에 신겨준
    꽃신만 한 짝
    파란 하늘 보고 돌아누워 있었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鳶처럼
    영원히 잃어 버린 내 그림자여,

    물빛 흔들어 몸을 감추고
    닫아 거는 가슴엔
    날선 초승달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