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22년 12월

  •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나쯤은

    이가 빠져 있어도 좋다

     

    네가 내게 들어와

    삶을 춤추게 하던 그 다리 같이

     

    등이 간지러운 시간만큼

    설렘이 부풀어 올라

     

    그 날 산바람에 묻어오던

    뻐꾸기 소리처럼

    올 것만 같다

     

    한 번 업은 후에

    평생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아 

  • 팔월의 눈

    팔월의 눈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첫 월급을 타서 보낸 한약 한 재가

    아버지의 삶에 이른 눈보라를 불러왔을까

    아들의 첫 선물에 너무도 좋아하던 환한 얼굴 너머로

    죄책감처럼 몰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삶의 된서리에도 푸르게 견뎌가던

    명아주 한 포기 시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해에는 눈도 참 일찍 왔다

  • 득음得音

    득음得音

     

     

    상수리나무 잎새에 매미 소리가 박혀있다

    한 달의 득음得音을 위해

    칠 년을 침묵의 폭포 아래서 피를 토한

    고단한 생애가 판화처럼 찍혀있다

    매미는 알았을 것이다 때로는 덧없는 길도

    묵묵히 걸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노래 한 곡 반짝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명가수의 뒷모습이나

    하루의 삶도 보장받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우화羽化

    결코 부질없는 생애는 아니라는 것을

    매미가 한 달을 소리쳐 울기 위해

    칠 년을 고행 하듯이

    시 한 편 남기기 위해 메아리 없는 외침

    수도 없이 외쳐대는 시인들이여

    모아이 석상처럼 매미는 시력을 반납한 채

    껍질로 남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득음得音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온 세상을 쩌렁쩌렁 울려줄 것인지

    사람들의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날 것인지

    세상에 무의미한 생애란 없다

     

  •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가을은

    오래 묵혀두었던 그리움을

    꺼내보게 하는 계절

     

    은행잎마다 내려앉은

    노란 그리움에 같이 물들다 보면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읽게 된다

     

    그리움은 나비이다

     

    보고싶다보고싶다보고싶다

    갈바람 한 줌에도

    무수히 날아오르는 그리움의 군무

     

    진정한 그리움은

    너에게 닿지 못 한다

    간절함의 무게로 떨어져 흙이 된다

     

    줍지 마라

    흘러간 사랑은

    흙이 묻은 채 그냥 놓아두어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