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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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세상을 환하게 한다

     

    쓰르라미 울음으로 저물어가는

    여름의 황혼 무렵

     

    지다 만 능소화 가지 끝에 피어난

    저 진 주황빛 간절한 말 한 마디

     

    바람의 골짜기에

    향기로운 웃음을 전하면서

     

    너는

    사랑을 잃은 친구의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해준다

     

    보라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남의 살 찢으려고 날을 세우는 것들

    널린 세상에

     

    벌 나비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젖을 물리듯 자장가 불러 주는

    세상의 어머니여!

     

    내생에서는 잠시라도

    너처럼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다

  •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가 고향이다

     

     

    어머니 없는 마을은 고향도 타향 같다

    어둔 밤 재 넘을 제 마중 보내 반긴 불빛

    된장국 끓이던 향기 잡힐 듯이 그립다

     

    빈 집의 살구꽃은 왜 혼자서 타오르나

    돌절구 돌 맷돌은 버려진 채 비를 맞고

    노을 녘 부르던 목소리 귀에 쟁쟁 울려온다

     

    어머니 가시던 날 고향도 따라갔나

    어린 날 추억들은 밤 새 소리에 아득하다

    허전해 돌아가는 발길 어머니가 고향이다

     

     

  • 벌레의 뜰

    벌레의 뜰

     

     

    화랑곡나방 한 마리

    회백색 호기심 활짝 펴고 내 주위를 선회한다

    시가 싹트는 내 서재는 벌레의 뜰이다

    어디에서 월동했다 침입한 불청객일까

    날갯짓 몇 번으로 시상詩想에 금이 마구 그어진다

    홈·키파 살그머니 든다

    그리고 놔두어도 열흘 남짓인 그의 생애를 겨냥한다

    내 살의殺意가 뿜어 나오고 떨어진 그의 절망을

    휴지에 싸서 변기에 버리면

    깨어진 시가 반짝반짝 일어설까

    창 넘어서 보문산이 다가온다

    고촉사 목탁소리가 함께 온다

    벌레야 벌레야

    부처님 눈으로 보면 나도 한 마리 나방

    푸르게 날 세웠던 살생을 내려놓는다

    벌레하고 동거하는 내 서재는 수미산이다

  • 물 위에 쓴 편지

    물 위에 쓴 편지

     

     

    물오리 한숨 풀어

    물 위에 편지를 쓴다

    썼다 지운 이야기는

    꽃잎으로 떠도는가

    옛날은 희미해지고

    향기만 가득 풍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