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21년 08월

  •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여수 앞바다가 빨갛게 각혈咯血하던 날

    포구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작은 배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고

    가자미식혜를 잘 하는

    이북할머니네 막걸리 집엔

    바다 사내들만 푸념을 나누어 마시고 있다.

    황토黃土를 실은 배들이

    부지런히 항구를 드나들지만

    뿌리고 또 뿌려봐야 새 발의 피

    바다의 피부가 워낙 부스럼투성이라서

    바람도 깨금발로 물을 건너고 있다.

    김 서방네 양식장엔

    벌써 우럭 새끼가 하얗게 떠올랐단다.

    쑤시고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바다는 밤새도록 눈뜨고 자는가.

     

     

    2021. 3. 16

     

  • 대양大洋이 뿔났다

    대양大洋이 뿔났다

     

     

    중앙 인도양을 달리다가 보면

    대양大洋이 뿔났다.

     

    칼스버그 해령海嶺이 로드리게스 섬에서

    아덴만까지

    섬 하나 없이 봉우리 문질러놓고

     

    성질나는 밤이면 우르르 우르르

    해저를 흔들며 으르렁댄다.

     

    바다는 사막沙漠이다.

    형형색색 빛나던 산호의 노래도

    온난화溫暖化의 발톱에 찢기어 간다.

     

    고국故國 남쪽 바다에 동백꽃이 핀 게 언젠데

    뿔난 바다는

    아직도 겨울을 벗지 못했다.

     

     

    2021. 3. 6

  • 그 여자의 뜰

    그 여자의 뜰

     

     

    정이 많은 여자는

    아랫도리에서 언제나 진물이 흐른다.

     

    겨울보다는 봄이 많이 머무는

    그 여자의 뜰엔

    탱자나무처럼 가시를 감춘 꽃들이 먼저 피었다.

     

    바닷바람이 불러서 갔다는

    남편은 세월 속에 지워지고

    그 여자의 뜰이 황폐해질 때쯤

     

    돌담이 무너졌다.

     

    너무도 허기져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받아들인 바다처럼

    그녀의 배는 탱탱해졌다.

     

    그 여자의 뜰에는

    파도가 산다.

    뒤척이면 그냥 출렁대는 신음이 산다.

     

     

    2021. 4. 17

     

     

  • 절망 앞에서

    절망 앞에서

     

     

     송 작가 거실 벽에는

     죽어가는 바다가 걸려 있다. 

     조가비 딱지마다 한 몸인 양 기름이 엉겨 붙고, 갈매기 몇 마리는 타르의 밧줄에 묶여 박제剝製가 되었다. 한 쪽 눈만 겨우 자유를 지켜낸 갈매기 눈망울에 담긴 해안선, 바다의 온몸에는 버섯처럼 부스럼이 돋아났다. 바위도 나무도 온 세상이 겨울 빛으로 가라앉았다. 

     넓게 자리 잡은 바다의 절망에선

     하루 종일 한숨처럼 수포水疱가 떠올랐다.

     

     

    2021. 3. 15

     

  •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해무海霧 접힌 후에야 알았네.

    어젯밤 바다가 왜 그리 숨죽이고

    흐느꼈는지.

     

    9,5m 길이의 몸에

    5,9kg 플라스틱을 채우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향고래

     

    어미는 심해의 어둠 속을 헤매며

    목메어 부르고 있을게다.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

    피를 흘리고 있을 게다.

     

    저녁노을 삼베옷처럼 차려입고

    을 하는 바다

    갈매기 목소리 빌려

    나도 고래를 조문弔問하네.

     

  • 적조赤潮

    적조赤潮

     

     

    심한 멍 자국 짓물러

    바다의 신음은

    온통 열꽃 빛이다.

     

    돌아누울 힘도 없어서

    혼절한 채 끙끙대는

    파도는 온통 앓는 소리다.

     

     

  • 슬픈 바다

    슬픈 바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