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7년 12월

  • 새해의 기원

    새해의 기원

     

     

    무술년戊戌年 첫 새벽에 풍등風燈 하나 띄웁니다.

    어둠을 뚫어내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부상扶桑까지 날아가서

    밝고 뜨거운 태양을 불러오십시오.

    이 땅의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십시오.

     

    정유년丁酉年 한 해는 너무도 추웠습니다.

    북녘 땅에서 연이어 미사일이 날아가고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폭탄이 덩치를 불렸습니다.

    대륙은 사드를 핑계삼아

    정치 경제적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바다건너에선 이 땅을

    전쟁터로 만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끼리라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높이를 겨루고

    세월호의 망령은 창으로 아직도 민족의 가슴을 찌릅니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어둠 속에 갇히고

    겨레의 결속은

    갈가리 찢겨졌습니다.

     

    사랑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증오를 부풀려서 빚은 나라입니다.

     

    각 부처部處에는 전문가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공신功臣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에

    신명身命을 바쳐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단죄하느라 진을 빼기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차례입니다.

     

    억새들도 서로의 등을 지키는 것이

    혼자 바람을 견디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미움보다는 용서와 사랑으로 뭉쳐서

    어깨동무하고 바람을 헤쳐갑시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는

    무술년 이른 새벽에 풍등을 띄우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노니

    희망 잃은 대한민국에 날개를 주셔서

    금빛 날개로 온 하늘을 덮게 하소서.

     

     

    2018년 1월 1일

    충청문화예술 20181월호

  • 겨울 허수아비

    겨울 허수아비

     

     

    빈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깨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다 벗은 채

    지워지는 허수아비

     

     

    2017. 12. 17

    시문학20183월호

    대전문학82(2018년 겨울호)

  • 주례사(김두호 윤희원)

    주례사

     

     

      날씨가 몹시 추운데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랑 김두호 군과 신부 윤희원양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결혼식을 갖게 된 양가의 부모님께도 축하의 말씀 올립니다.

     

      일본의 시인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한 알의 모래에 온 세상을 다 담아두듯 잇사는 이생과 전생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날도, 태어난 장소도, 성장 환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오늘 부부라는 인연으로 함께 묶이게 된 것은 전생에 맺어졌던 수천 겁의 인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키워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앞날의 행복이 바로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가 이 주례를 기꺼이 허락한 것은 저희 부부는 결혼 40년 넘게 아직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잘 자랐고, 제가 주례를 맡았던 이십여 쌍의 제자들도 모두 아이들 잘 낳고 행복하게 잘들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행운을 사랑하는 김두호 군과 윤희원 양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교사이며 지혜로운 신랑 신부가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리라 믿습니다만 노파심에 몇 가지만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신랑 신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행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을 변치 않고 꾸준히 지켜가는 데 행복의 열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꽃과 같아서 서로 힘을 모아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부부라는 시를 보면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반을 접어 상대방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주며 작은 근심도 사전에 포착해서 해결해주는, 반려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변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가정 평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은 배우자의 부모 형제를 내 부모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쉽지 않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맺어진 인연인데 왜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부싸움의 시초는 상대방 가족에게 섭섭하게 대했다는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알고 모든 주례사들이 당부하는 말인데도 잘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신랑 신부는 사랑을 오래 지켜가기 위해서는 신랑은 신부의 가족을, 신부는 신랑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해주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당부할 말은 자식은 적당하게 낳아 잘 교육시키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이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 즐기면서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식은 꼭 필요합니다. 늙어 의지할 곳 하나 없을 때 자식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지가 됩니다. 자식 교육은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가르치는 현명한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 변하지 말고, 배우자의 가족을 내 가족 같이 사랑할 것이며, 적당하게 자녀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열쇠가 됩니다. 신랑 신부는 주례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한 이 자리를 함께하시는 하객 여러분께서도 새 출발 하는 이 가정을 지켜봐주시고 미흡할 때는 따뜻한 보살핌이 있기를 부탁드리며, 간단하나마 두서없는 말로 주례사를 대신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1216

                                                         주례 엄 기 창

     

  • 무상無常

    무상無常

     

     

    다랑논엔 벼 대신 병꽃만 피어있다.

    할아버지 발걸음 끊어진 지 너댓 해

    두견새 울음소리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떡갈나무 몇 그루 자리 잡고 누워있다.

    멧돼지 목욕하러 밤마다 내려오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해가 쉬이 지는 마을

     

     

    2017.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