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7년 05월

  • 봄날

    봄날

     

     

    아파트 정원엔 봄꽃이 다 졌는데

    태화산 골짜기에 와 보니

    봄은 모두 거기에 모여 있었다.

    사진에 담아 가 무얼 하려는가.

    산은 붓으로 그리지 않아도

    마음에 향기로 배어 있는 걸

    새 소리 몇 소절에 꽃은 아직 피고 있어서

    문득 내 인생의 봄날에

    음각으로 도장 찍힌 사람을 생각하며

    그냥 산이 되어 보았다.

    기다림은

    삶의 옷자락에 찍혀지는 무늬 같은 것

    비웠다 생각하면 언제나 지우다 만

    색연필자국처럼

    초록으로 일어서는 당신,

    신열처럼 세월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고향에 오면 끓어오르는 봄날이여!

     

  • 삼충사三忠祠의 문

    삼충사三忠祠의 문

     

     

    궁금하지도 않는가보다

    뻐꾸기가 부르는데

    굳게 잠겨있는 삼충사 문 밖에서

    오월의 연초록 목소리로 두드려 본다.

    사람은 바뀌어도 그 자리에 서면

    모두가 의자왕이 되더라.

    민중들의 목소리는 늘

    허공에 흘러가는 바람이더라.

    아프고 아픈 것들 철쭉꽃으로

    피었다가 지는데

    깨져버린 마음처럼

    삼충사 문은 열릴 줄 모른다.

     

     

     

  • 사월

    사월

     

     

    태화산 골물소리에  송홧가루 날린다.

    뻐꾸기 노래에도 노란 물이 들었네.

    술잔에 담아 마시네. 내 영혼을 색칠 하네.

     

    다람쥐 한 마리가 갸웃대며 보는 하늘

    무엇이 궁금한가 연초록이 짙어지네.

    온종일 앉아있으니 내 손 끝에 잎이 피네.

  • 오월

    오월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팝꽃을 피우고 있다.

    리모델링을 한 거리로

    도솔산 뻐꾸기 소리 

     내려오면

    주문呪文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황홀한 예감

    오래 닫혀있던 그 사람 

    마음의 창이 열릴까.

     

     

    2017, 5, 6 

    문학사랑124(2018년 여름호)

  •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엔

    당신의 창가에 커튼이 내려져도

    서러움이 덜할 것 같다.

     

    가로등 일찍 꺼진 거리에

    수많은 꽃잎들이 불을 밝히고

    안개처럼 흐르는 향기

     

    도솔산 뻐꾸기 소리 한 모금

    커피에 타서 마신다.

    온몸으로 번져가는 나른한 행복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꽃이 다 지지 않는 한

    닫혀 진 커튼 더 활짝 열리겠지.

     

    아직 잠들었던 작은 봉오리마다

    황홀한 예감들이 깨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