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7년 04월

  • 바람에게

    바람에게

     

     

    잎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심어놓고 흔들어대는데

    잎 필 겨를이 어디 있으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눈 흘기지 말아라.

    뿌리가 다 말라가는데

    꽃 피울 정신이 어디 있으랴.

     

    열매 맺지 않는다고

    소리치지 말아라.

    꽃도 못 피웠는데

    열매 맺을 사랑이 남아 있으랴.

     

     

  • 봄날의 오후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2017년 여름호)

     

     

  •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