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2014년 12월 19일

  • 대청호 가을

    대청호 가을


    물빛이 하늘을 닮아

    한없이 깊어지는 가을 무렵에

    다섯 살 손자 놈 손목을 잡고

    대청호 풀숲 길을 걷고 있었다.

    생명의 음자리표가

    점차로 낮아지는 길모퉁이에서

    사마귀 한 마리 마지막 식사를 하려고

    두 발로 메뚜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메뚜기 죽는다고

    팔짝팔짝 뛰는 손자 곁에서

    인과의 어두운 그늘이 고 놈에게 드리울까봐

    한참을 망설이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무서워 지르는 손자의 외마디에

    깜짝 놀라 눈을 돌리니

    사마귀의 강인한 턱이 메뚜기 머리맡에 다가와 있었다.

    자연의 바퀴 속에서 생명은 피고 지지만

    업연의 짐을 피하기 위해

    눈앞에서 한 생명을 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손자 놈 어려울 땐 메뚜기 제가 도와주겠지.

    손등으로 사마귀 머리를 탁 치니

    메뚜기 신나게 풀숲을 뛰어갔다.

    메뚜기의 등 뒤로 저녁 햇살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가장 두꺼운 대청호 깊은 곳, 내 마음밭에는

    하늘의 밝은 별이 내려와 반짝이고 있었다.


    2014. 12. 19

    <시문학> 201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