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제3시집-춤바위

  • 춤바위

    춤바위

     

    나는

    영혼의 샘물처럼

    맑은 시구 하나 찾아

    헤매는 심마니

     

    아무리 험한 골짜기라도

    시의 실뿌리 한 올

    묻혀 있다면 찾아갑니다.

     

    칡넝쿨 아래 숨은 절터를 찾고

    춤바위에 올라

    흥겹게 춤추었던 자장율사처럼

     

    반짝이는 한 파람

    가슴을 울리는 노래에도

    춤바위에 올라가 춤추는 학이 되겠습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산삼밭을 만난다면

    끝없이 춤추다가 돌이 되겠습니다.

  • 스타킹

    스타킹

     

     

    은밀한 바위 틈

    뱀이 벗어놓은

    긴 허물 하나,

     

    올해는

    오는 걸 잊었는가!

    밤이면 별빛 새는

    꾀꼬리 집에

     

    발 벗어 못 오면

    신고 오라는

    별빛 뽑아 짜놓은

    스타킹 하나.

     

    2014. 6. 27

  •  

    걷다 보면 길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네.

     

    돌아보면 나의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어.

     

    예쁜 꽃들이 언제나

    건강하게 웃어주었고

     

    상큼한 바람들이

    내가 뿌려주는 물 더 촉촉하게 적셔 주었지.

     

    씨 뿌리고 거름 주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나무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어두운 세상

    한 등 한 등 밝히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내 길이 끝나는 곳에 솔뫼가 있고

    솔 꽃들아!

    너희들의 향기 속에서 닻을 내리니 행복하구나.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네.

     

    때로는 바람 불고 눈보라도 날렸지만

    이 길은 내게 천상의 길이었네.

     

    2014. 5. 22

      

  • 생명의 선

    생명의 선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는 콧노래 속으로

    잠자리 한 마리 날아든다.

     

    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

     

    내 비명에 부딪혀 추락하는

    작은 몸뚱아리

     

    도망가도 도망가도

    유리창에 붙어 따라오는

    잠자리의 단말마

     

    유월의 초록빛 산하가

    피에 젖는다.

    내가 끊어놓은 생명의 선이

    바람도 없는데 위잉 위잉 울고 있다.

     

     

    2014. 5. 27

  • 사랑싸움

    사랑싸움

     

     

    사랑싸움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진다.

     

    아내와의 싸움엔

    내가 늘 진다.

     

    싸움도 꽃이라면

    우리 화원엔

    지는 꽃 빛깔이 더 찬란하다.

     

     

    2014. 5. 20

  •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심청이 인당수에서

    꽃으로 지듯

    세월호에 갇힌 넋들 꽃비 오듯 지던 날은

     

    심 봉사 온몸으로 울던

    몸부림처럼

    바다도 하루 종일 웅얼거렸다.

     

    소금보다 짠 사람들의 눈물을 모아

    자다가 소스라쳐 울부짖는

    애비 에미의 아픔을 모아

    용왕님께 빈다면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한 송이씩 해말간 얼굴들

    “엄마” 부르며 피어나서

     

    진도 옆 온 바다가

    온통 연꽃으로 물들어 출렁였으면 좋겠네.

     

    오늘 아침  대한 사람들 모두

    심 봉사 눈 번쩍 뜨고

    손뼉 치며 일어나듯

     

    “와!!!!!!!”

    하는 함성으로 강산이 무너졌으면 좋겠네.

     

     

    2014. 4. 18

  • 세월 속에서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세월 가는 걸

    잊다가

     

    내 신발 신발장 밖으로

    밀려나는 줄도 몰랐네.

     

     

    2014. 4. 17

  • 민들레 편지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 천 년의 미소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 누님의 수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